1분기 후일담 (2026)
6 min read

이번에 가장 큰 이슈는 이사였다. 이전 집에 비해 체감 세 배는 더 크다. 정말 ‘작업’만을 위한 공간이 생겼다. 1600의 넓은 하얀 데스크와 32인치의 넓은 모니터를 들였다. 창가 바로 앞에서 바깥을 등지고 앉아 일을 하는 조그만 로망이 있었다. 덕분에 일하려고 딱 앉을때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생산성에 아주 도움이 된다.

새로 나온 맥북에어 m5 15인치도 샀다. 맥 미니와 고민을 많이 했다. 집에서도 카페처럼 ‘소파에 앉아서 우아하게 작업하기’ 하고 싶어서 맥북으로 골랐다. 놓고 있던 개인 프로젝트도 다시 하고 싶다. 클로드 구독도 개인적으로 해야겠다. 회사 일도 좋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작업을 하고 싶다. 블로그도 그 중에 하나였다. 책상이든 소파든 앉으면 당장 할게 없더라도 무언가 끄적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공간이 주는 힘. 이번엔 얼마나 가는지 봐야겠다.

index 1775354145779

초록색의 코듀로이 소파베드. 따뜻한 느낌의 색감과 소재라 취향에 맞았다. 이 소파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원룸에 소파를 두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이 소파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아주 만족스럽다. 사실 잘 때 빼고는 누워 있는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동안은 의자 아니면 침대 밖에 없어서 앉아있다가 허리 아프면 침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진짜로 누워있고 싶어서 누워만 있었던게 아님).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서 10분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다가 출근준비하러 가고, 퇴근하고도 집 오자마자 소파로 간다. 맥북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AI 시대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1.
막 취업했을때만 해도 챗GPT는 멍청했다. 멍청한 챗GPT와 몇달 지내고 난 뒤에는 Cursor라는게 나왔고, 요즘은 또 클로드가 대세다. ‘코로나 학번이에요~’ 하는것처럼 나도 어디가서 ‘AI 사번이에요~’ 할 수 있을것 같다. AI의 발전과 나란히 걷는 커리어.

몇달 전에는 RAG 책을 샀다가 바빠서 몇 주동안 책을 펴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시대가 바뀌었다. mcp mcp 하더니 이제는 토큰 많이 든다고 다시 cli로 돌아오고 있다. 이게 어디 링크드인이나 스레드 글에서 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체감하는 것들이라는게 더 무섭다.

2.
처음에는 이게 좋더라 저게 좋더라 하는것들을 꼭 써봐야할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제 omc를 완전히 제거했다. 어디서 좋다고 주워들은 플러그인보다, 내가 자주 쓰는 스킬과 파이프라인 한두개를 계속 고도화하고 토큰 소모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는게 더 중요해보인다.

이런 생각을 막 하다보면 가끔은 그냥 호들갑 같기도 함.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 주인공의 아빠는 로봇의 등장으로 공장에서 쫓겨난다. 그치만 결국 공장에서 로봇을 수리하는 일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해피엔딩!

여기서 팩트는, 공장에서 나사 조이던 사람들 중에 로봇 수리공으로 살아남은건 몇 명 안될거라는 거다. 잠깐 어필하자면 내가 세팅해둔 스킬들과 하네스가 꽤 근사하다. 요즘엔 피쳐 개발하는거보다 이게 더 재밌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3.
이런 시기에 내가 개발자라는건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변화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AI 네이티브한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회사의 비개발자 직군에게 먼저 새로운 업무 방식을 제시하고,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나. 괜히 마냥 불안에 떨게 아니라, 감사하게 이런 기회를 받았다고 생각하는게 훨신 행복할 것 같다.

재능

정말 재밌게 본 비주류 초대석. 허간민과 많은 내적친밀감이 생겼다. 특히 허키라는 친구를 새로 알게 되어 좋다. 비프리&허키 앨범과 이센스 저금통을 열심히 듣고 있다. 통통배와 민음사tv는 취향과 거리가 멀지만, 세계문학전집 책을 한 권 골라볼까 생각을 하고 있다.

해야되는 시간보다 더 하게 되면 그건 재능이다. 3월부터 기타레슨을 받고있다. 난 이미 두번 실패했다. 제대하고 20만원 짜리 기타를 샀는데 건들지도 않았다. 작년 겨울에 백만원 짜리 펜더를 샀다. 이마저도 삼개월정도 놀리고 있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레슨을 끊었다. 재능은 없지만, 왼손 손톱 아래 생긴 굳은살을 계속 흐뭇하게 만질만질하게 된다.

기타에 흥미를 붙이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북촌 오늘의집 쇼룸에서 본 낮은 원목 책장, 쿠팡에서 산 기타 스탠드, 오아시스 포스터, 캐치 인형이 아주 잘 어울린다. 관심목록에 한 달 넘게 그림의떡으로 들고 있던 세이투셰 러그를 드디어 샀다. 나도 모르게 러그 위로 올라와서 기타를 잡게 된다! (그러곤 비장하게 코드를 잡고 ‘조개껍질묶어’를 연습하는데…)

index 1774969323305

어떻게 살것인가

토스커뮤니티에 입사하면 누구나 한번씩 승건님과 문화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그 때 들었던 말이 기억에 빡 남았다. 워라밸이라는게 − 그러니까 일과 나머지 내 시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것이 −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요. 일하는게 즐겁고 가슴이 뛴다면 왜 굳이 일과 삶을 분리하려 들까요. 일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삶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린 일과 삶에서 모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교회에서 말씀을 듣다가 위 이야기가 다시 생각이 났다. 그 때 메모한 내용이 뭐였냐면,

  • 방탕이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것. 내가 내 마음대로 하는것이다.
  •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처럼 살아가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게, 나는 교회를 즐거워하며 다니나 아니면 즐겁게 하기위해 노력하나. 내가 누군가를 즐거워한다는것은 자발적으로 그 대상과 함께 하려고 하고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것이다.
  • 그러니 기도할때 ‘내가 자기부인을 할수잇는 힘을 주세요’ 가 아니라, 내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해주세요. 내 안에 하나님을 더 채워주세요 라고 구해야 한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니 예배와 삶이 분리되는것.
일이 가슴이 뛰지 않으니 일과 삶이 분리되는 것.

내가 원하고 가려고 하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는 길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말은 쉽지.

공연

2월. 튜비클
작년 공연에 지소쿠리클럽의 피넛버터샌드위치를 도전했다가 실패한 이후로 ‘어쩌구클럽’이라는 이름을 가진 밴드들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 괜히 무언가 접점이 있어 반가운 느낌이랄까. 튜스데이비치클럽도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듣다가 빠지게 되었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는 꼴찌로 들어가도 어느곳이든 잘 보여서 좋아하는 공연장이다. “영원은 아니어도”에서 미러볼에 빛을 쫙 쏘는 연출이 정말 멋있었다. 내 집에서 창가에 미러볼을 두면 어떨까 잠깐 고민해볼 정도였다.

3월. 더글로우
올해의 첫 페스티벌이다. 올해는 아마 좀 많이 다니지 않을까 싶다. 처음으로 양일권으로 다녀왔다. 첫째날에 열심히 뛰고 둘째날은 정말 힘들어서 다섯시 넘어서 갔다. 이찬혁 1시간은 정말이지 꿈만 같았다! 근래 들어 가장 큰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앞으로 페스티벌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혁오는 어릴 때도 들었지만 지금 들으니 느낌이 꽤 다르다. 그새 나이를 좀 먹긴 했나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사랑으로’ LP를 주워왔다. 마지막 곡으로 들어있는 new born이 특히 좋다. 8분동안 똑같은 루프만 도는데 어떻게 노래에서 이야기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index 1775058723211

무언가를 새로 좋아하게 되면 이걸 왜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일종의 욕심인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었는데, 이걸 모르고 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더 기쁘고 더 감사할 수 있는거 아닐까 라는 대답으로 받았다. 작년에 처음 갔던 클블에서 받은 은혜와 혁오의 young man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나는 봄이 좋아. 아침에 커피를 사러 나갈 때 확 느껴지는 공기를 맡으면 행복하다! 롱슬리브 한 장 입고 나갔을때 아침과 저녁에는 살짝 서늘하고, 낮에는 살짝 더운 일교차도 너무 좋다! 길거리에 펴있는 벚꽃들도 이쁘고, 솜사탕 장사하는 오토바이도 오래간만에 마주치는거라 반갑다! 이 좋은 날씨를 만끽하려고 열심히 걸으면 이 망할놈의 콜린성 알레르기가 또 스멀스멀 올라와 머리가 간지러운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이 봄이 너무나 짧을거라는걸 알아서 더더욱 소중하다! 뉴 히피 제너레이션을 날씨에 맞춰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날이니까 다음주 쯤에 휴가를 하루 쓰고 혼자 공원에 가서 누워있을 생각이다!

다음 분기의 버킷리스트

  1. 낮에 혼자 잔디에 누워서 책읽기.
    꽤 오래 전에 사놓고 안 읽은 이찬혁 소설과 이슬아 산문집을 읽을거다.
  2. 프로필 사진 찍기. 한번은 찍을 때가 됐다.
  3. 기타 연습을 열심히 하기.
  4. 내가 진짜 이제 소비 줄인다.

Back to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