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절대 없었던 수많은 경험과 생각을 했던 해였다. 여러모로 스스로에게 실망을 많이 한 해였다. 미루고 미룬 회고. 이제는 정말 쓴다. 두 문단 정도 적어놓고 끝난 임시저장글 네 개를 지우며. 그래도 여기에는 좋은 얘기만 써야지.
감사일기
- 이 글을 쓰는 1월의 첫번째 토요일에도 멋진 하루라고 생각하며 잠들 수 있게 하심에 감사.
- 어디서 본 건데, “돈 걱정 할 때가 제일 행복할 때다”. 돈 걱정하게 해주심에 감사.
- 지금 다니는 회사와, 양재, 공동체로 이끄심에 감사.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한 것들이다.
- 처음으로 월세를 구해서 살아봤다. 집을 구하는 과정부터 한번도 마음 쓰인 적이 없었고, 좁은 집이었지만 부족함 없게 하심에 감사.
- 그 모든 행복한 일과 힘들었던 일이 2025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게 새삼 놀랍다. 걸어온 모든 길이 은혜였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 연말이 되게 해주세요.
- https://youtu.be/GU6VfynUTuA
양재
양재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났다. 그동안 5평 조그만 공간 여기저기에 내 취향과 정이 잘 스며든 것 같다. 일도 하고 밥도 먹는 너비 1200짜리 월넛 식탁이 아주 만족스럽다. 산울림과 잔나비 LP를 벽에 걸었고, DMZ 갔다와서는 아래에 슬로건도 걸어놨다. 영국 갔다온 후에는 오아시스 투어 포스터도 액자에 걸어놨다. 볼 때마다 아주 마음에 든다!
동네에도 잔잔하게 추억이 쌓였다. 집 앞에는 파스타가 맛있는 브런치 집이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라떼가 맛있는 조그만 카페도 있다. 진짜 자주 먹던 꽈배기집도 있었는데, 요즘은 질려서 거의 안 간다. 교회도 걸어갈 수 있다. 요즘은 그마저도 멀어서 양재역으로 가서 셔틀을 타고 간다.
곧 다시 계약 만료일이 다가온다. 작년 이맘때 회사가 신도림으로 이사 갔음에도 월세 2만원을 올려 계약을 연장했었는데, 이번에는 3만원을 올리겠다고 한 집주인 덕분에 이번에는 양재를 떠나게 될 것 같다. “집을 떠날 때 쓰는 랜선 집들이” 글이 하나 올라갈 것 같다.
블로그
다시 블로그를 쓰기로 정말로 다짐했다. 개발 블로그라면 무언가 기술적인 이야기를 일상 블로그라면 되게 거창한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Astro로 블로그 이사하기
글을 마크다운으로 쓰고 깃으로 관리하는게 도움이 된다. 글을 쓰다가 말더라도 커밋하고 푸시까지 해버린다. 글을 올려도 내가 친구들한테 날라다주지 않으면 배달이 안되는 플랫폼이다보니.. 쓰다 만 글을 올리는게 아주 마음이 편하다.

어떻게 하면 블로그를 죽이지 않을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후문에서 할머니한테 사온 병아리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꾸준한 사랑을 주며 블로그를 길러보겠다.
AI
첫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지 2년이 넘었다. AI가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몸소 느낀 2년이기도 했다. 취업하기 몇달 전부터 사용하던 챗GPT를 제작년 여름부터는 회사의 돈으로 쓰고 있다. 작년 봄에는 챗GPT가 토스의 공식 업무 툴이 되어, 따로 구매요청을 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모두가 사용하고 있다. Cursor를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코딩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몇주 전에는 클로드 코드를 처음 써보았는데 내 생각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하고 있다.
조금만 찾아보아도 글이 많이 보이더라. 클로드와 함께 고민한 내용을 프로젝트 안에 마크다운 문서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MCP가 좋다더라.. 이런 모드가 큰 작업을 할 때 좋다더라.. AI 발전에 맞춰서 의식적으로 찾아보고 바꾸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했다. 우선 1월의 목표로 잡아보았다.
완벽한 회사는 없다
‘좋은 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한 해였다. 결국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쉽지 않은 고민. 이게 문제인데 저게 문제인데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남 탓처럼 느껴져서, ‘너무 교만인가’ 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반복이었다. 그래도 그 과정 안에서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고민의 결과가 올해 나타날거라 믿는다.
회사와 팀은 많이 커졌지만 프론트엔드는 여전히 혼자다. 내가 느끼는 갈증이 시니어의 부재 때문인지 동료의 부재때문인지 모르겠다. 조만간 동료가 오게 된되면, 내가 정말 필요했던게 뭔지도 알게 되겠지 (일단 내가 선택한 건 시니어보다는 동료였다). 어쩌면 리소스 문제 자체가 아닐 수 더 있다. 그치만 나보다 경험이 많은 프론트엔드 개발자와 함께 2년을 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이 회사가 나에게 줄 수 있는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것일까 — 를 계속 고민하면서 연차를 쌓게 된다. 물론 상황과 환경이 떠먹여주는건 아니지만.
성장
그래도 분명한 건, 일반적인 큰 팀에 있었다면 하기 어려웠을 경험들을 해왔다는 점이다. 보통은 프로덕트면 프로덕트, 플랫폼이면 플랫폼, UX면 UX처럼 역할이 명확히 나뉘지만, 적어도 FE라는 역할 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놀 수 있었다.
배포랑 롤백이 늘 불편해서 배포 어드민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고, 빌드 속도를 개선해 보려고 모노레포 이관 같은 플랫폼 작업도 해봤다. 플러터로 되어 있던 내부용 앱은 서비스별로 우선 웹뷰로 이관하면서 하이브리드 앱 환경을 0부터 만들어봤고, 장기적으로는 RN으로 전체 이관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큰 제품을 맡아서 고민하는게 즐겁다. 주도적으로 제품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큰 그림과 방향을 고민한다. 디자인 역량에 대한 자신감은 여전히 없지만 디자인은 여전히 재밌다. 어쩌면 이런 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래도 나름 토스에 합류하면서 상상했던 “2년 후의 나”에 맞게 잘 컸다고 생각한다.

브랜딩
다른 개발자들의 블로그나 이력서를 보면 다들 “OOO한 개발자입니다” 같이 짧은 한 문장으로 시작하더라.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나, 이 블로그에선 어떤 글을 쓸까. 이 블로그 홈에 들어갈 문구를 적으면서 자연스레 나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공간을 단장합니다. 웹 개발을 도구로 멋진 제품을 만듭니다. 일에 애정을 가지고 몰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링크드인과 토스 커리어 페이지에 올라가는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어떻게 나올지는 생각 안하고 내가 요즘 어떤 일을 하는지, 왜 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신나게 얘기했던 것 같다. 주절주절 떠든 내용을 HRC분이 멋드러진 글로 워싱을 해줬다. 웃기게도 그걸 내가 다시 읽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다시 느끼게 됐다.
공연
올해도 공연과 페스티벌을 많이 다녔다.










2-4월. 검정치마, 더글로우, 리버틴즈, 콜드플레이. 콜드플레이는 정말 대단했다. 살면서 처음 보는 형태의 공연이었다. 두 손가락을 하늘 위로 들고 전세계로 사랑을 전파할 때 터지는 폭죽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6월. 올해 처음 가본 DMZ. 작년부터 정말 가고 싶었던 페스티벌이었다. 브랜딩이 너무 이뻤다. 가 본 락 페스티벌 중에 최고였다. 처음 보는 (가면 쓴) 이찬혁. 동네와 오랜만에 라이브에 추는 춤. 심장 뛰는 차우차우 인트로와 그냥 막 뛰는 항상엔진을켜둘게.
7월. 꿈 같았던 오아시스였다. DMZ 티셔츠와 MNTV 모자를 쓰고 갔다. 내가 맨체스터에 있었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자세한건 유럽여행 5편 쯤에 온갖 주접과 행복으로 따로!
9월. 몇년동안 애플뮤직과 유튜브에서만 듣다가 처음 공연 가서 뛸 때만큼 하이한 순간이 없다. 올해에는 3호선 버터플라이, 최엘비가 이런 케이스였다.
10월. 일산에서 두번째로 만나는 오아시스 공연에서는 과도한 포즈난의 추억을 챙겼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서 하나를 꼽자면, 가면을 벗은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 홍대 상상마당에서는 말달리자와 개구장이를 같은날에 듣고 뛰었다. 이건 귀한거임.
11월. 윤지영, 한로로. 윤지영의 제작년 DMZ 비디오를 보고 단독공연을 계속 기다렸다. 블루버드와 나의 정원에서는 정말 명반이다.
12월. 태양의 서커스 쿠자. 미쳤다.

새해에는
- 이사갈 새로운 집에서는 조금 더 멋진 일상을 보내기
- 귀에 안정적으로 꽂히는 장발 도전하기. 여름 전까지만 버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 게으르지 않기.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매우 일찍 일어나보고 싶다. 쇼츠를 끊어야 하는데
- 회사에서는 무언가 과도기 같은 한 해를 보냈다. 올해에는 더 단단한 플랫폼과 제품을 만들고 싶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사실 기술 부채의 가장 큰 원인은 역량이다.
- 멋진 커리어를 고민해보기. 5년 후의 나는 어떤 강점이 있는 개발자가 되어있을까
- 조금 더 운동에 적극적인 사람이 되기. 헬스장을 못간 날에는 집에서 푸시업이라도
- 본격적으로(진짜임) 돈을 모으기. 돈을 왜 모으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기도하며 나아가기.
-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사랑하기